분류없음낯선생각 1팀 놀러간 후기/ 쓰다보면 3팀 강혜빈

강혜빈
2019.05.22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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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클에서 메이트는 참 중요한 역할이다. 메이트는 팀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 간의 벽을 허물기도 하고 안심 시키기도 하고 웃게 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게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넘치는 발언이나 과한 리액션이 없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지난시즌 우리 팀의 메이트였던 하민님이 저 어려운 일을 잘 해냈었구나 깨달으면서, 현재 계시다는 팀에 한 번 놀러가고 싶었다. 날짜가 마침 맞아서 주제를 봤더니 존엄사라니. 안락사라는 이름이 아직 우리 사회에 생소할 때 국어수업에서 찬반을 선택해 글을 써본 적 있지만 그 이후로는 고민이 멈췄던 무거운 주제라 부담되면서도 대체 무슨 얘기가 오고갈지 궁금하기도 했다. 

준비하면서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도 알게되었고, 우리나라에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연명의료결정법도 시행예정이란 사실을 알게됐다. 존엄사가 안락사에 속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주 소극적인 부분에서 진전이 있었던 것일 뿐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스스로 목숨을 놓는 것에 대해 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회다. 한국사회와 보수기독교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영향이 일부 있을런지 몰라도 나 역시 스위스 등지에서 합법적으로 시행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자살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이 감내해야 할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나 큰 상황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냐는 주장이었다. 생의 자기결정권이 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에게 있음을 반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안락사를 허용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사회적 부작용이나 악용의 소지에 대한 염려가 있음에도 이에 대한 개인적 판단을 보류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내 생에 ‘아직까지는’ 죽음을 생각 할 정도의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디 사람들이 안락사와 존엄사의 개념을 혼용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 이유는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에 ‘존엄’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이란 자기에게 있는 삶의 무게와 고통을 짊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데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제주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의 삶은 루게릭병과 싸우며 자신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예상하면서도 끝까지 제주에서 용눈이 오름을 찍었던 묵묵한 모습이었고, 자서전을 채 다 마치지 못한 그에 대한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다른 어떤 감정보다 앞서 ‘인간의 존엄’을 느꼈다. 우리 엄마의 마지막에도 연명치료 여부 결정까지 내게 주어졌던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건강했을 때 부터 입버릇처럼 말해 온 엄마의 뜻을 가족 중 누구보다 내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그게 엄마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홀로 그 결정을 하는 데 나는 주저함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존엄’이라는 말의 무게를 남들보다 무겁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겁게 시작했던 대화는 2부 질문으로 넘어가면서 좀 더 재미나게 변했다. 우리는 탄생과 죽음의 조건 중 둘 중 하나면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지에 대해서도 말해보았고, 원하는 장례식의 모습, 내 묘비명, 또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모두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다면 내 장례식을 축제처럼 만들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기억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슬프지 않도록, 내가 내 생애를 기록하는 영상도 미리 만들어 놓고, 내가 좋아하던 노래의 플레이리스트도 미리 만들어 놓고, 먹고 마시고 춤추며 나를 위한 마지막 축제로 만든다면 그게 내가 남은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묘비명엔 ‘잘 놀다 간다’라는 말을 적어두고싶다. 살면서 더 좋은 게 생기면 업데이트 할테니 부디 이 글을 본 사람이 적극적으로 남들에게 이야기 해 주면 좋겠다. 

삶에서 중요한 죽음을 많이 경험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들도 더 많아지고 깊어진다. 어릴 때는 아주 슬프고 무서운 금기같은 단어였지만 지금은 삶이란 단어만큼 가깝고 또 어느순간 내게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산다. 연말마다 한해를 결산하는 것도 무사히 한 해를 보낸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이제는 달달이 특별한 일 있을 때 마다 연말결산에 이 일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살 수록 죽음은 더 가깝고 가까울 수록 삶에 더 감사하게 된다.

세 시간이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지만 너무 알차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현재 메이트를 하고 계시다기에 글쓰기 팀 만큼 말하기 팀도 잘 이끌고 계신지 궁금해서 확인하러 간 건데 세 시간 꽉 채워서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황송하게 영감님까지 되고 집에 와서 또 긴긴 글을 쓴다. 

단조롭게 생각하고 말하는 삶에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더해주는 크클. 요새 일상 중에 제일 재미있는 일이다. 

지주영
2019-05-22 12:08:22
더 열심히 놀아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