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예술가의 수첩 3팀/나에게 꽂힌 데미안의 한문장

김성익
2019.09.0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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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다이어리를 받자 마자 서점에 달려가 데미안을 읽어봤었습니다. 하지만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데미안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벌써 9월이 되어버렸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예술가의 수첩 3팀에 놀러가 나눈 이야기들이 오래 잔상처럼 남았습니다. 다들 데미안 읽어 보셨나요? 혹 맘에 드셨다면,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셨나요? 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놀러가기를 하며 적었던 미션을 여기에도 남겨 봅니다.

 

[붕대를 감는 것은 몹시 아팠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나는 열쇠를 발견했고, 때떄로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형상이 졸고 있는 그곳, 내 자신의 내부에 완전히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데미안의 가장 유명한 문구,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이 성장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러고 노력하지만, 일찍히 그 어떤 사람도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형태의 성장도 있겠지만, 성장은 삶을 구원하지도, 별들 사이로 인도하지도 그리고 진리를 찾게 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작가의 말처럼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것이다.
자기 자신이란 무엇일까, 나는 '자아' 라는 환상에 대해 그것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파하는듯 말을 하고 다니지만, 그 말 그대로 지키며 또는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모순적인 욕망을 표출하며 과거의 나를 배신하는 행동들을 하기도 하고 내가 경멸하던 행동들을 스스로 하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게 오늘을 미루는 일까지 이 모든일들은 사람의 하루 안에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 라는걸 만들어 그것이 자기자신이라고 굳게 믿는 이 행동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일찍이 누구도 자기자신이 되어본이 없다는 그의 말이 신날하게 들리는 것은 비단 이런 이유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자아를 갖는 것이 마냥 무의미하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전쟁은 참혹하다. 헤르만 헤세 또한 그 사실을 잘 이해하던 인물 중 하나였으며 나는 그저 이 책이 그의 오랜 방황을 옮겨놨을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희망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얼마나 가치있는가 라고 말하는 인간의 양면성, 자아는 허상에 불과함에도 그것을 갖는 것은 나로하며금 어떤 방향성을 가지게 한다. 만약 그 방향성이 말에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드러날 때, 그의 실존은 그렇게 존재를 앞선다. 그렇기에 운명의 형상이란 보잘것없으면서도 나의 삶을 인도하는 수십만 광년 밖에서 날아온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를 별빛같은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기억되기엔 거창하지만 사그라들것임을 알면서 맹렬히 빛나는 한 사람의 인생같은 것일 것이다. 때문에 이 문장을 통해 나는 헤르만 헤세가 그 스스로의 답을 내어 놓으며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존재는 허상이나 진짜중 하나를 고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삶이란 무한이 연장되어 나에게 이르는 길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